성시간 연중 제 23주 목요일
삶 안에서,
하루의 여정 안에서, 내 마음이 멈추어 버림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후에 내 스스로에게서 알게 되는 것은, 무언가가 내 앞에 가로 막혀서가 아닌, 무언가로 인해 충돌되어서가 아니라, 정작 내 마음의 시선이, 앞이 아닌 뒤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안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금의 나에게 있는, 내 주위에 있는 모두를, 그대로 보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과, 그로인해 빛이 없는 그늘과 같이 내 가슴이 차갑게 굳어 있음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내안에 있던 수많은 기억들 안의 선택들을 “후회”라는 모습으로써 마주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예수님은
사랑으로써, 용서로써,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내면 안에서, 타인보다도 정작 죽음의 직전까지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신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용서의 부재함의 가장 큰 이유로, 내안의 내 스스로의 향한 “후회”를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시선에서 그와는 반대로,
나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이유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 내 안에 그릇된 선택을 아파하며 내려놓지 못하는 것, 용서하지 못하는 것, “후회”임을, 결국 관계 속의 외적인 영향력보다 큰 원수임을 이야기 합니다.
후회는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화상을 나타냅니다.
신앙 안에서, 후회에 대해 경고하는 이유는, 언급하는 이유는 나의 과거가 완벽했음에 대한 반증이 아니라, 그러한 내안의 부족 안에서도, 항구하게 있는 주님이 있다는 것, 이 또한 내가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 부정에 대하여
상처에 대하여 하느님이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는, 또 다른 관계의 부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 미운 이가 있습니까?
상처가 되어, 아프게 한 그 무엇에 이후의 내 삶의 관계에 저항체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래서 사랑의 자리에서, 내 삶의 성장의 자리에서, 내 신원의 자리에서, 나를 흔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만약 있어 그렇다면, 이제는 그 모습의 이면에, 내가 지금까지 몰랐을 뿐, 내 마음에 “후회”라는 마음의 시선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기도해봅니다. 그래서 사랑보다도, 용서보다도, 정작 내 자신의 한계가 깊은 관계가 아닌, 표면적인 관계만이 내 주변에 있다면, 그러한 내 안의 모습을 위해 기도해 주었으면 합니다.
원수는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원수는 내가 지금도 그 무언가에 대해, 연민으로써라도 후회하고 있다면, 원수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나를 나로서 받아들일 수 없도록, 나를 용서하지 못하도록, 영혼의 걸음을 멈추도록, 후회로써 그렇게 스스로에게 상처 주도록 이끄는, 가면으로 있습니다.
기도합니다.
내안의 미움으로, 아직까지 아파하는 내 안의 나를 느끼고 있다면, 용서하지 못해, 그 무언가를 원수와 같이, 마음으로 체념하며, 영혼의 체온을 잃은 듯 살아왔다면, 이제 그 영혼에 위로와 사랑을 청원해 봅니다.
아픔의 시선이 관계가 아닌,
상처의 시선이 이유가 아닌,
분노의 시선이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시선 안에 있었음,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파할 수밖에 없던 유한함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합니다.
그 마음에 주님의 축복을 온전히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