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2015년 3월, 따사로운 봄날에 광화문글판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번 ‘봄편’은 자연을 노래하는 생태시인 함민복의 <마흔 번째 봄>에서 가져온 것이다. 함 시인은 이 글에서 봄산이 꽃 피기 전에는 설렘을, 활짝 꽃이 핀 후에는 기쁨을 주듯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광화문글판 ‘봄편’은 오는 5월 말까지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과 강남 교보타워 등에 내걸린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는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이고, 차량 통행량 25만대에 이르는 바쁘고 복잡한 도심의 한가운데다. 여기 시민들의 마음 속 휴식처가 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글귀가 있다. 교보생명빌딩 외벽에 걸려있는 ‘광화문글판’이 그것. 가로 20m, 세로8m의 글판은 1년 동안 4번의 옷을 갈아입으면서 시간에 쫓기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바쁜 일상 속의 여유로 자리 잡았다.
지난 1991년부터 시작된 광화문글판은 이제 새로운 글판이 걸릴 때마다 언론과 시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사회적 문화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160개국에도 소개돼 서울을 상징하는 ‘문화아이콘’이 됐다. 지난 2009년 일본 산케이신문은 광화문글판에 대해 “그림과 시로 된 멋진 느낌을 주는 커다란 글판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며 “도쿄에도 이런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개했다. 광화문글판이 올해로 25년째를 맞이했다.
글판은 1991년 1월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처음 시작됐다. 신 회장은 “광화문 사거리는 유동인구가 많고 이목이 집중되는 곳인 만큼 시민들에게 좋은 글귀를 소개하면 좋겠다”면서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토록 했다. 돈 벌기 급급한 기업주라면 기업홍보에 사용했을 테지만 그는 이 공간을 시민들에게 양보하고 힘과 용기를 주고자 했다.
지금은 시구(詩句)나 감성적인 내용으로 시민들에게 여유와 위로, 웃음을 주고 있지만 초기에는 표어나 격언 등 다소 딱딱하고 계몽적인 느낌의 문구를 사용했다. 글판에 처음 사용된 문구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 경제활력 다시 찾자’는 격언이었다. 1994년 ‘훌륭한 결과는 /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 1997년 ‘나라경제 부흥시켜 / 가족행복 이룩하자’ 등 나라경제를 일으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시민들을 독려하는 내용의 직설적인 문구들이었다.
1997년 말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모두가 절망하고 고통 속에서 살기 힘들 때, 시심(詩心)이 담아낸 지금의 글판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한파로 삭막했던 1998년 겨울에는 고은 시인의 시가 우리 모두를 다독이고 상처를 어루만졌다.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
2009년 ‘봄편’에는 뉴욕타임즈가 ‘2002년 올해의 우수 그림책’으로 선정한 류재수 동화작가의 ‘노란우산’을 배경으로 활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