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빵’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얼마 전 한 종편TV드라마에 등장했다. 원래 몸빵이란 맷집을 빗대서 나온 용어인데, 체력이 좋고 맷집과 근력이 대단한 사람을 두고 “몸빵이 강하다”고 했다. 몸으로 용케 버텨내면 몸빵이다.
드라마에서는 돈이 없어 벌금을 내는 대신 감옥에 가야하는 딱한 처지 비유하는 말로 나온다.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팔다가 들통이 나 사기죄로 고소당한 여인이 돈이 없어 벌금을 못 물게 되자 돈을 갚는 대신 열흘 동안 노역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남편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절절하다.
벌금형을 받고 낼 돈이 없어서 교도소로 가는 사람이 해마다 4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나라의 벌금제는 죄질에 따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벌금이 정해지는 총액벌금제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없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벌금대신 몸으로 때워야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들은 이런 총액벌금제가 아닌 일수 벌금제(Day-fine)를 택하고 있다. 소득에 따라 벌금을 정해서 받는 제도다. 같은 죄를 저질렀어도 소득이 많으면 많이 내야 된다. 벌금을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달리 부과해야 적절한 징벌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제도다.
이처럼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는 우리나라 극빈층에게 벌금 액수만큼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이 지난달 문을 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장발장(Jean Valjean)은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벌금을 낼 돈이 없어 장기수로 벌을 받고 한 사제(司祭)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뜨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장발장은행은 이렇게 벌금형을 받고도 벌금을 못 내 교도소로 가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이자, 무담보로 대출을 해준다. 자금은 후원을 받았는데, 보름 만에 1억 1천 만 원 정도가 모아졌다고 한다. 전 현직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고 종교계는 물론 문화예술인, 해고노동자 등 다양한 인사와 단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성금으로만 운영되는 장발장은행은 지금까지 벌금미납으로 교도소에 갇힐 뻔한 시민 47명에게 20여일 만에 이미 총 8천200여 만 원을 무이자 무담보로 대출해줬단다.
대출 수혜자 가운데 애절한 사연이 많았다. 자기 명의를 빌려줘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용직 윤 모(31)씨는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60일을 교도소에서 보낼 뻔했다.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은 문 모(33)씨는 홀로 네 자녀를 키우는 기초생활수급권자다. 젖먹이를 포함한 네 아이를 보름 동안 봐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이었다.
장발장은행은 수익 창출이 아닌 ‘벌금제도 개선’을 최종 목표로 우리 사회에서 빨리 문을 닫기를 희망하는 특이한 은행이다. 우리나라에선 단순 벌금형을 받고도 돈이 없어 수감돼 노역해야 하는 생계형 범죄자가 많기 때문이다.
실정법상 벌금을 선고 받고 약식명령서가 온 지 30일 안에 모두 벌금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분납이나 신용카드 납부도 안 된다. 분납할 시간적 여유라도 주어지면 그동안 일해서 버는 소득으로 납부라도 할 터인데, 납부 시한에 쫓겨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옥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가령 한 20대 젊은이가 보험에 안든 차로 택배를 하다가 경미한 사고를 내 벌금형을 받고 돈이 없어서 감옥에 간다면 앞길이 캄캄할 것이다.